국내여행/충청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윤봉길의사 기념관

하늘소년™ 2015. 10. 21. 11:00


가봐야 하지 하면서 항상 가보지 못한 곳 

윤봉길 의사 기념관입니다. 

윤봉길 의사에 영정이 봉안이 되어 있는 충의사부터 먼저 들어가 봅니다. 



충의사를 들어가는데 앞에 가족끼리 오신 분들도 보인다.

충의사에는 영정이 봉안이 되어 있는데 차마 근처에서는 사진을 찍을 용기가 나지 않고 

죄송한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이 교차가 됩니다.

나는 25살에 무엇을 하였나 생각을 하면서


충의사를 나와 윤봉길 의사 기념관으로 갑니다. 

수 많은 태극기를 따라서 걸어가는데 가는 발걸음 또한 가벼운 것이 아니고 무거움으로 그 길을 따라 가봅니다.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윤봉길 의사가 중국으로망명을 떠나기 전에 남겼다는 일곱 글자 

사내대장부는 집을 나가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이 글자가가 들어가자마자 눈에 딱 보입니다. 

그리고 기념관 안으로 들어가면 보이는 화면에 

여러분은 밤에도 자유럽게 책을 볼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한글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습니까? 

이 모든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숙연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거 같습니다. 




기념관 안에는 안중근 의사에 생애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되어있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발자취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망명을 결심한 윤봉길 의사는 자신이 사용하던 사랑방을정리를 하였으며 일제에게 트집 잡힐 만한 글이나 편지는모두 불태우고 간직해도 괜찮을 것들만 

서랍 속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벼루와 붓을 꺼내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이란 글을 남겼으며 재롱을 떠는 맏아들을 안고 부엌으로 가서 

아내에게 물 한 잔을 달라고 하여 마신 의사는 아버지에게 매부 될 사람을 보러 간다는 말을 남기고 중국으로 망명길을 떠났다. 


윤봉길 의사에 친필인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윤봉길 의사 홍커우 공원 의거의 모습을 재현한 곳입니다.

윤봉길 의사가 대한 독립을 위해 폭탄을 투척을 하여 일본 제국주의 인사를 죽거나 다치게 한 사건이며 

중국의 장제스는 '중국의 100만 대군도 못할 일을 조선의한 청년이 하다니, 윤봉길 길이 빛나리'라 칭송하며,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의 독립운동을 인정하고, 지지하는선언을 합니다. 


기념관 밖으로 나가면 김구 선생님과 윤봉길 의사님 옆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윤봉길 의사에 생가가 있는 곳으로 갈려면 육교를 건너서가야 됩니다. 

거기에 보이는 충의사하고 수많은 태극기 


윤봉길 의사 생가 가는 길 


윤봉길 의사의 동상


윤봉길 의사에 생가인 저한당입니다.

한국이 일제식민지하에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윤봉길 의사가 독립사상을 실천하며 나라를 건져낸 집이라는 뜻입니다.


윤봉길 의사 기념관 및 생가를 둘러보고 나는 25살 때 무엇을 했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그리고 지금이 그 시절과 만약에 같다고 하면 나는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도 들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