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진은 생소한 이름일 수도 있지만 왕의 초상화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어진 박물관은 왕의 초상화 박물관이라고 생각을 하시면 되는 곳입니다.


어진 박물관은 태조어진 전주봉안 600주년을 맞이하여 2010년 11월에 개관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 곳은 태조어진을 비롯하여 태조어진을 봉안할 때 


사용된 각종 가마 유물 및 경기전 관련 유물들이 전시가 되어 있다고 있습니다.


총 5개의 전시실이 있는데 어진실 1에는 태조어진, 일월오봉도, 용선, 봉선이 있으며


어진실 2에는 세종, 영조, 정조, 철종 , 고정, 순종 어진이 있습니다.


역사실은 태조어진의 역사와 경기전의 운영, 관리조직 제례 및 건축 관련 유물 등이 있으며


가마실은 가마 유물 및 태조어진 봉안 행렬이 있습니다.


기획 전시실은 조선왕실 및 전주 관련 특별 전시공간 이렇게 총 5개의 전시실이 있습니다.


입장료는 어른 3천 원 청소년, 대학생, 군인은 2천 원, 어린이는 1천 원이며


단체는 어른 2천500원 청소년, 대학생, 군인은 1천500원, 어린이는 500원입니다.


같이 가신분이 입장료를 받기 전에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는데 입장료를 받은 다음부터는 들어오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고 그리고 관리는 더 잘되는 거 같다고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말을 듣고 보니 한옥마을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여기 안에는 훨씬 적어서 구경을 하기에는 편하게 관람을 할 수가 있던 점도 있습니다.


조경묘


조경묘를 만들기 전까지는 조선왕실의 시조를 모시는 사당이 없었다고 하며 전주 이씨의 시조인 


이한과 그 부인의 위패를 모신 사당입니다. 이한은 신라 때 높은 벼슬을 지냈고, 그 부인은 경주 김씨이다.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는 이한의 21대 후손이며, 조경묘는 조선 영조 47년(1771)년에 세워졌으며,


 영조가 세손인 정조로 하여금 쓰도록 하였으며 이한과 그 부인의 위패를 봉안했다고 하며, 


철종 5년(1854년)에 경기전과 함께 보수해 오늘날의 모습을 갖췄다고 합니다.


조경묘는 경기전과 함께, 전주가 조선왕조의 발상지임을 상징을 하는 곳입니다.

들어가서 어떻게 생겼나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문은 굳게 닫혀져 있어서 

들어갈 수 없었던 곳

문이 닫혀져 있다고 설명이 있고 내부 사진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건데 그런것이 없어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어진박물관 안으로 들어오니 먼저 반겨주는 건 태조 이성계의 어진입니다.


어진은 왕의 초상화를 말을 하며 태조어진은 조선의 건국자의 초상이라는 점에서 


조선왕조를 상징을 한다고 합니다. 


지금 현재 남아 있는 건 어진박물관에 있는 태조어진이 아닌 바로 옆에 위치를 하고 있는 


경기전에 있는 어진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고 합니다.


태조 어진은 평상시 집무복인 익선관과 청색의 곤룡포, 백옥대와 흑화를 착용한 

전신상에 가슴과 어깨에는 왕을 상징을 하는 다섯 발톱을 가진 용이 그려져 있으며 

1872년 모사본이지만 조선초의 어진 제작기법을 담고 있으며 곤룡포도 역새 임금들이 

홍룡포를 입은 것에 반해 태조는 청룡포를 입고 있습니다.


어진 옆에 있는 왕의 상징인 일월오봉도 하고 용선, 봉선이 전시가 되어 있으며,


일월오봉도는 해는 왕 달은 왕비 그리고 다섯 개의 산으로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지하 1층에는 어진실 2, 역사실, 가마실, 기획전시실이 위치를 하고 있어서 지하 1층으로 내려가 봅니다.


기전에는 일 년에 여섯 번 제향을 지냈다고 하는데 설날, 한식, 단오, 추석, 동지, 납입에 

거행이 되었다고 하며, 지금은 음력 9월 9일 중앙일로 바꾸어 대제를 지낸다고 합니다.


어진의봉안을 그림으로 그린 것인데

조선왕조는 건국 후 태조어진을 한양을 비롯하여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 신라의 수도인 경주, 


고려의 수도이자 태조가 살았던 개성, 태조의 출생지 영흥, 


태조의 본향인 전주 등 모두 6곳에 봉안이 되었다고 합니다. 



바로 옆에 있는 전시관에 그림이 한 개가 있는데 황산대첩 그림이 있습니다.



여기 어진박물관에서 배운 것 이 한 개가 있는데 어진은 살아 있을 때만 그린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왕이 생존시에 그린 그림을 도사 왕이 돌아가신 후에 그리는걸 추사 기존의 어진을 본떠 만든 걸 

모사라고 하였다고 하며, 털끝 하나라도 똑같지 않으면 초상화가 아니라고 하였으며, 겉모습만이 아니라

 내면의 정신세계까지 담아내야 된다고 하였다고 합니다.

왕의 초상화를 어진이라는 것을 알았는데 어진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는 방법과 함께 배우고 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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