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가볼만한 곳 - 만해 한용운 심우장



만해 한용운

1919년 3.1 운동 때 민족대표로 33인 중 한 분으로서

<님의 침묵>의 시인인 만해 한용운

1933년부터 1944년까지 살았던 곳이며, 동쪽으로 난 대문을 들어가면

북쪽으로 향한 기와집인 심우장과 양옥의 관리사

그리고 만해가 직접 심었다는 향나무가 있습니다.





길상사에서 걸어서 심우장으로 가는 길에 있는 표지판

언덕을 올라가면 심우장으로 갈 수 있는데

만해 한용운 선생님에 글이 적혀 있습니다.

"나는 돌에는 내 이름을 안 새깁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나의 이름을 새기면 새겼지 돌아다가 이름을 새기지 않겠습니다."

"남향하면 바로 돌집(조선총독부)"을 바라보는 게 될 터이니

차라리 볕이 좀 덜 들고 여름에 덥더라도 북향 하는 게 낫겠다.

"조선 땅 덩어리가 하나의 감옥이다.

그런데 어찌 불 땐 방에서 편안히 산단 말인가."

"나는 내 나라를 세우는데 힘을 다한 것이니 벌을 받을 리 없을 줄 안다.



서울 성북구 만해 한용운 심우장



만해 한용운

1879년 8월 29일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셔서

1905년 인제 백담사 출가

1907년 고성 건봉사에서 최초로 참선

1919년 3.1 운동 민족대표 33인 독립선언서를 발표

1921년 속초 신승사 승려로 원적

1926년 "님의 침묵"회동서관에서 발행

1933년 성북구 심우장에서 정착

1944년 심우장에서 입적



전체 규모가 5칸에 불과한 작은집

가운데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온돌방 오른쪽에는 부엌이 있습니다.



실내 내부는 구경을 할 수 있어 슬리퍼가 있습니다.



내부에는 심우장의 내력과 함께 국어 시간에 많이 배운 님의 침묵이 적혀 있습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 끝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의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님의 침묵 번역본 및 만해 한용운 선생께서 작성한 글귀들이 전시가 되어 있습니다.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으로 독립선언을 하신 만해 한용운

심우장에 잠시 앉아 휴식도 하며 미세먼지가 없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진심으로 감사인사를 드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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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 성북동 222-1 | 만해한용운심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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