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면 길거리마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와 함께 코를 찌르는 냄새로 화제가 되는 나무가 바로 은행나무예요. 그런데 이렇게 냄새 때문에 민원이 끊이지 않는데도 왜 지자체들은 계속 은행나무를 가로수로 심는 걸까요. 사실 은행나무에는 단순히 보기 좋은 것 이상의 실용적인 이유들이 숨어 있어요.
화재를 막아주는 방화수 역할
은행나무가 가로수로 선택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화재 확산을 막는 능력이에요. 은행나무는 껍질이 두껍고 코르크질이 많아서 불이 쉽게 옮겨붙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예로부터 ‘방화수(防火樹)’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화재가 다른 구역으로 번지는 것을 차단하는 완충 역할을 해왔어요.
실제로 일본에서는 관동대지진 당시 은행나무 주변에서 불길이 멈췄다는 기록이 전해질 정도로, 은행나무의 내화성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어요. 목질 자체의 수분 함량이 높고 잎이 잘 타지 않는 성질도 화재 확산을 늦추는 데 도움을 줘요.
도심 화재는 건물이 밀집한 지역일수록 순식간에 번질 위험이 크기 때문에, 도로변에 심어진 은행나무 한 그루가 생각보다 큰 안전망 역할을 하는 셈이에요. 이런 이유로 소방 관련 전문가들도 도시 조경 계획에서 은행나무 같은 내화수종의 배치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어요.
가을철 악취의 진짜 원인
은행나무 하면 떠오르는 또 다른 이미지는 바로 그 특유의 냄새예요. 이 냄새의 원인은 암은행나무에서 열리는 열매의 겉껍질에 들어 있는 ‘부티르산’과 ‘헵탄산’ 성분 때문이에요. 이 성분들은 곰팡이나 해충으로부터 씨앗을 보호하기 위해 진화한 방어 물질인데, 사람에게는 발 냄새나 오래된 치즈 냄새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문제는 이 열매가 도로에 떨어져 밟히면 냄새가 더 강하게 퍼진다는 점이에요. 게다가 열매 껍질에 직접 닿으면 우루시올 계열 성분 때문에 피부 알레르기나 접촉성 피부염을 일으킬 수도 있어서, 맨손으로 은행을 줍는 것은 피하는 게 좋아요.
지자체들은 매년 가을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암그루를 골라 열매가 열리기 전에 미리 솎아내거나, 그물망을 설치해 열매 낙하를 막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열매를 맺지 않는 수그루만 골라 새로 식재하는 지자체도 늘고 있어요.
도시의 허파, 공기정화 능력
은행나무가 오랫동안 가로수로 사랑받아온 또 다른 이유는 뛰어난 공기정화 능력이에요. 넓은 잎 표면적 덕분에 미세먼지와 분진을 효과적으로 흡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자동차 배기가스가 많은 대로변에 은행나무가 많이 심어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에요.
은행나무 잎은 표면에 미세한 털과 왁스층이 있어서 공기 중 오염물질이 잎에 잘 달라붙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이렇게 흡착된 오염물질은 비가 내릴 때 씻겨 내려가면서 다시 공기 중으로 재방출되는 양이 적다는 특징도 있어요.
또한 은행나무는 다른 활엽수에 비해 이산화탄소 흡수량도 우수한 편이라 도심 열섬 현상을 완화하는 데도 기여해요. 여름철 그늘을 만들어주는 넓은 수관 역시 보행자들에게 실질적인 더위 완화 효과를 줘요.
병충해에 강한 생존력
- 플라보노이드 성분: 은행나무 잎과 줄기에는 살균·살충 효과가 있는 플라보노이드 계열 성분이 풍부해서 벌레나 곰팡이, 바이러스가 기생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어요.
- 긴 수명: 이런 항균 능력 덕분에 은행나무는 병충해로 인한 고사 위험이 낮아 수백 년, 심지어 천 년 넘게 살아있는 개체도 있을 만큼 생명력이 강해요.
- 관리 비용 절감: 병충해 방제를 위한 약제 살포 빈도가 다른 가로수보다 적어도 되기 때문에 지자체 입장에서는 유지관리 비용을 아낄 수 있는 실용적인 수종이에요.
서울시 가로수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이유
이런 여러 장점이 종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은행나무는 국내 대도시 가로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 서울시의 경우 전체 가로수 중 약 35% 안팎이 은행나무로 조사된 적이 있을 만큼 압도적인 비중을 보여요.
여기에 더해 은행나무는 병충해에 강하고 성장 속도가 안정적이며, 가을에는 노란 단풍으로 도시 경관을 화려하게 만들어주는 심미적 가치까지 갖추고 있어요. 실용성과 미관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수종이라는 점이 지자체들의 선택을 받는 핵심 이유예요.
다만 최근에는 냄새 민원이 계속 누적되면서 신규 식재 시에는 열매를 맺지 않는 수그루 위주로 심고, 이미 있는 암그루는 단계적으로 교체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바뀌고 있어요. 앞으로는 냄새 걱정 없이 은행나무의 장점만 누릴 수 있는 거리가 늘어날 것으로 보여요.
결국 은행나무는 단순히 예쁜 단풍을 보여주는 나무가 아니라, 화재로부터 도시를 지키고 공기를 정화하며 병충해에도 강한 다재다능한 수종이에요. 가을철 냄새 때문에 눈살이 찌푸려질 때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오랜 세월 도시를 지켜온 은행나무만의 역할이 있다는 걸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