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여행 시 가장 기대를 많이 했던 경기전입니다.


경기전은 어진박물관 옆에 있고 입장료도 같이 받아서 한 번에 두 곳을 다녀올 수가 있습니다.


경기전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보관하기 위해 세운 곳으로 많은 역사 유적과 유물이 


자리를 잡고 있으며, 원래 경기전은 부속 건물을 거느린 웅장한 규모였다고 하는데


일제강점기에 절반의 땅을 잃고 부속 건물을 철거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을 하던 전주사고가 위치를 하고 있는데 


여기에 있던 조선왕조 실록은 유일하게 임진왜란 당시에 소실이 되지 않은 곳이기도 합니다.





유일하게 태조 이성계의 여진이 모셔져 있는 곳입니다.

원래는 총 26개가 있었다고 하였는데 지금 현재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은 

여기 경기전에 있는 어진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가운데 길은 신도라고 해서 다니지 못하는 길이며, 신들만 다닐 수 있는 길입니다.

여기에서 신은 태조 이성계를 말을 하는 것이며 종묘 또한 가운데 길로 가면 안되게 되어 있으며

어쩔 수 없이 신도를 지나가야 할 때는 예를 갖추지 않고 지나가면 안된다고 들었습니다.


1대 태조에서부터 25대 철종까지 472년에 이르는 조선왕조의 역사를 

기록한 국가 기록물인 '조선왕조실록' 임진왜란 때 총 4개의 사고 중에 3개의 사고인 

춘추관과 충주, 성주사고에 있는 실록들이 모두 불타버렸지만 유일하게 경기전에 있는 

전주사고에 보관되고 있었던 실록만이 지역인들의 죽음을 불사한 용기 때문에 남아 있어서 

아직까지 보관이 되어 있으며 지금은 세계에서 지켜야 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이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갑자기 궁금한 건 


조선은 27대인 순종까지 있는데 조선왕조실록은 왜 

태조 이성계부터 25대인 철종까지 실록이라고 하는 이유는 

26대 고종황제와 27대 순종황제의 실록도 있지만 일제에 의해 주도적으로 이루어진 실록이며,

 기존에 실록과 틀리게 심각한 역사왜곡이 있기 때문에 실록으로는 인정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전주사고 안에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잇는데 그곳에는 조선왕조실록에 대한 소개 및 


임진왜란에 실록의 피난을 하는 방법 등이 자세히 소개가 되어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실록이 정읍 내장산으로 옮겨졌고 계속해서 호남지방 침공이 예상이 되어서


내장산을 떠나 아산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이후 실록은 해주로 옮겨졌고 임진왜란이 소강상태에 이르자 강화도로 옮기고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실록은 안주를 거쳐 평안도 안변의 묘향산으로 옮겨 


임진왜란이 끝날 때까지 보전이 되었다가 임진왜란이 끝난 후 1603년 강화도로 옮겼다고 합니다.



여기에 조선왕조실록의 표지와 크기가 다른 이유 대해서 설명이 자세히 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조선 전기에 제작된 실록은 모두 감색 비단을 이용하여 표지를 제작하였으며,

크기는 왕대 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가장 큰 것은 11대 왕인 중종실록이라고 합니다.

현존하는 실록을 보면 동일 크기인데 표지의 재질이 다른 것은 조선 후기에 표지만 

다시 제작을 하여 묶었고 내지는 조선 전기의 전주사고본 실록이라고 합니다.


이 곳에 태실도 있는데 서울에서 창경궁 안에도 태실이 있습니다. 


이 곳에 있는 태실은 예종대왕 태실인데 태실은 왕가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그 태(탯줄)를 소중히 석실에 보관을 하였는데 그것을 태실이라고 합니다. 



솔직히 아무것도 모르고 지나가면 그냥 건물들이 있구나 하면서 걸어가던가 


할 거였는데 예전에 학교에서 국사시간에 배운 내용인 전주 사고하고 경기전 등을 보면서 


예전 조상들의 역사와 전통을 다시 한 번 뜻깊게 전주에서 배운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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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3가 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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